[광야에서의 편지] 창세기33장 “세겜에서 안주해버린 야곱..”

“창세기 강해”

창세기 33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창세기 33장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33:1-15 에서와 야곱의 만남!
  • 33:16-20 세겜에 천막을 친 야곱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고 골반(엉덩이)뼈를 다친 야곱은 절뚝거리며 이제 에서를 만나러 갑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두려움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다는 믿음과 용기로 나아갑니다. 자 그런데 이젠 그를 죽이려 했던 형 에서가 쫓아오는데..

 

 

 

 

 

 

 

[창33:1 야곱이 멀리 바라보니 에서가 400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다. ]

 

창32장 3

 

지난 시간 이야기 했던 것처럼,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왔다는 것은 한 가족을 상대로 꽤 많은 병력이 움직인 것이었는데 이것은 사실상 처음 에서가 집에서 출발할때는 여전히 복수심의 마음으로 출발했다고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에서에게는 야곱을 죽일만한 충분한 이유도 있었고 당연히 야곱도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일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이 일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하심과 도우심 아니면 형 에서가 나를 용서한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모습을 보며 원래의 야곱스타일이었다면 급히 도망쳤거나 얼른 빠져나갈 다른 궁리나 살기위한 다른 방도를 생각해 냈을 것입니다. 머리가 굉장히 빨리 돌아가고 계산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야곱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도망가지 않았고 그 상황을 직면합니다. 왜요? 이제 더 이상 도망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도망치며 사기치며 비굴하게 사는 삶이 지긋지긋했을 겁니다. 마치 에스더 왕비처럼 죽으면 죽으리다 라는 심점으로 에서를 만나러 나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미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 그분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직접 피부로 경험하고 확신을 갖게 된 ‘얍복강 사건’이 조금 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우리 조상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할아버지에게 약속하신 그 가나안땅의 유업의 언약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낭떠러지에 한발을 내디뎌 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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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이런 아무것도 또 아무 길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믿음으로 한 발짝 내딛고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순간, 이건 불가능해’ ‘이건 절대 할수없어’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될 수 없어!’ 라고 먼저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오늘도 훈련해야 합니다!!

 

 

 

 

 

 

 

[창33:1 … 그래서 그는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절 여종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세우고 레아와 그녀의 자식들은 그 다음에, 그리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절 자기가 앞서 나아가 땅에 몸을 일곱 번 굽히면서 형에게 다가갔다. ]

 

창33장 2

 

두 여종과 그녀들의 아들들을 먼저, 그 다음 레아와 아들들 그리고 라헬과 요셉의 순서로 보아 여전히 야곱이 라헬과 요셉을 가장 아끼고 있음을 엿보게 됩니다.

 

이 전장에서는 얍복강에서 가족들을 다 보내놓고 자신이 가장 뒤에 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야곱이 이들을 뒤로한 채 자신이 목숨을 걸고 가장 앞서 나아갑니다. 마치 이 모습은 제자들보다 예수님께서 앞서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나아갔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 막10:32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님이 앞장서서 가시자 제자들이 놀라고 뒤따라가는 사람들도 두려워하였다.

 

 

 

일곱번 몸을 굽혀 절하면서 다가가는 모습은 고대 왕들이나 자신들을 정복한 자들에게 나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비굴하고 가식적인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져질렀던 잘못에 대한 진정한 회개의 마음과 미안함에서 나온 행동이었을 겁니다.

 

 

 

 

 

 

 

[창33:4 그러자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으며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서 그들은 서로 울었다. ]

 

창33장 1

 

그렇게 나아갔던 야곱에게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형 에서가 자신을 용서하며 다가왔던 것입니다. 마치 왕비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다 라고 나갔을 때, 생각지도 못하게 왕의 긍휼함을 받은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지난 시간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미 야곱이 알지 못하는 사이, 보지못하는 사이 죽이려 다가오는 삼촌 라반을 전날 만나서 마음을 바꿔주신 것처럼, 형 에서의 마음도 야곱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방문하셔서 그 분노의 마음을 바꾸셨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해 미리 일하셨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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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한 모든 저주의 사슬을 이미 하나님은 끊고 계시고 우리보다 앞서 나가시며 모든 장애물들을 거두시고 우리를 선한 목자처럼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혹 오늘 여러분이 길을 걷다가 운전하면서 아무 사고가 나지 않았던 것은 이미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손쓰셨던 것일 수 있습니다. 오늘 혹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에 미리 감동을 주셨을 겁니다.

 

여러분이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셨고 마련해놓으셨다라는 사실을 안다면!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 싸우고 계시고 저주를 끊고 계시고 착착착 우리를 위해 길을 만들고 계심을 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아마 감사함이 끊어지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창33:12 이렇게 말하였다. ‘자 가자. 내가 길을 안내하겠다’ 13절 ‘형님도 아시겠지만 애들은 연약한 데다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양과 소들도 있으니 하루만 더 심하게 몬다면 모든 짐승이 다 죽고 말 것입니다. 14절 그러니 형님은 먼저 가십시오. 나는 앞서 가는 짐승들과 자식들에게 보조를 맞춰 천천히 가서 세일에서 형님을 뵙겠습니다‘ 15절 ‘그렇다면 내 종 몇 사람을 너와 함께 머물게 하여 너를 돕도록 하겠다’ ‘형님,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형님의 호의만으로도 족합니다’ 16절 그래서 그 날 에서는 세일로 돌아갔다. ]

 

둘이 화해한 후, 에서는 야곱을 자신의 땅으로 친히 인도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자신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세일땅으로 데려가서 같이 살려고 한 모양입니다.

 

이 에서의 정착지였던 세일땅은 이스라엘의 사해의 남동쪽, 요단강 오른편 즉 과거에는 에돔땅이었고 지금 현재는 요르단 땅입니다. 어찌보면 에서는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유업을 주시기로 했던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다른 곳으로 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쪽으로 갈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빠 이삭과 엄마 리브가가 살고 있는 곳이자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으로 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전에 말씀 드렸지만 이미 야곱은 15살까지 천막에서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을 거라고 말했었습니다.(창25:27) 그러면서 야곱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약속, 장자의 축복과 땅의 언약을 기억했을 것이고 그것을 갈망했을 겁니다.

 

에서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 호의를 단호히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일단 자신은 천천히 가겠다고 나중에 세일에서 만나자고 사실상 거짓말을 합니다. 야곱은 이미 세일이 아닌 벧엘을 통해 헤브론에 갈 생각이 있었습니다.(창35:27)

 

또 슬슬 그의 약점이 올라왔던 겁니다. 아마도 야곱이 세일이 아닌 숙곳을 통해 세겜으로 갔다는 소식(17,18절)을 들은 에서는 또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났을 겁니다. 야곱은 사실대로 말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실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창33장 3

 

 

 

 

 

 

[창33:17 그러나 야곱은 숙곳으로 가서 거기에 집을 짓고 가축 우리를 만들었는데 숙곳이란 말은 그가 오두막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이었다. 18절 야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의 세겜 성에 무사히 도착하여 그 성 부근에 천막을 치고… ]

 

위 사진을 보시면 에서는 세일쪽 남쪽 밑으로 내려가고 야곱은 북쪽 “숙곳”으로 올라갑니다. 완전히 반대로 갑니다. 그 숙곳에 있다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와 “세겜”으로 들어갑니다.

 

아브라함도 야곱이 건너온 똑 같은 길(“Adam bridge”)을 통해 세겜으로 가장 처음 들어와 단을 쌓고 예배했었던 것 다 기억하시죠? (창12:5-7)

 

이 세겜으로 들어와 야곱은 천막을 쳤다(하나, חָנָה)라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간단하게 잠시 휴식만 하려던게 아니라 어느정도 거주하기 위해 했던 행동이었습니다.

 

그 다음장 34:1-4에서도 야곱의 딸 디나가 성숙한 처녀가 되어있었다는 것은 세겜에서 몇 일, 몇 달이 아니라 몇 년간 살았다는 것을 입증해 줍니다.

 

야곱은 집에서 도망쳐 나와 벧엘에서 자신이 드렸던 기도를 기억하고 아비 집으로 곧장 돌아 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 오는 도중 안주해 버린 것입니다.

 

  • 창28:20-22 그리고서 야곱은 하나님께 맹세하며 말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이 여정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셔서 나를 내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내가 기념비로 세운 이 돌은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내가 반드시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잠시 안주하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문제가 터집니다. 바로 34장에 ‘디나가 강간당하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다음 시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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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열심히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땅에서 우리 믿는 자들은 “나그네 인생”이라는 겁니다. (벧전1:17) 나그네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며 삶의 소망과 희망을 이 땅에 두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 마22:23 바로 그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이 사두개파 사람들은 사독계열의 자손들로써 이때 당시 대제사장직과 나라의 모든 권력과 파워 그리고 돈줄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중산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면 사두개파 사람들은 완전히 상위층 소수의 권력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가까이에 사두개인들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집에 가보면, 그때 당시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으리으리하고 커다란 집터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창33장 8

(Old city 안에 사두개파가 살았다고 추정되는 크고 으리으리했던  3층짜리 집 구조.)

 

바로 그랬기 때문에 사두개인들은 성경을 알았지만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요? 바로 이 땅이 살만했기 때문입니다. 행복했고 내 마음대로 주무르고 내가 원하는대로 뭐든지 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내게 굽실거렸고 나를 우러러 봤습니다.

 

굳이 죽어서 부활까지 생각할 필요없이 이 땅에서만 잘 먹고 잘 사는걸로 만족하면 된다고 느꼈던 겁니다. 어떻게든 이 땅에서 잘 먹고 성공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안주했습니다.

 

 

 

그런데 때론 우리도! 가진 것이 많아지다 보니 안주하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듭니다. 내려놓기가 어려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저도 타국에 살려 나오면서 처음엔 케리어 2개로 왔는데 지금은 짐이 많이 불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은혜도 있었지만 막상 또 떠날려고 한다면 이 많은 짐들을 어떻게 가지고 가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합니다. 그냥 다 놓고 나눠주고 가면 되는데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그게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가진게 많을수록 나그네의 삶을 살아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고 가볍게 짐을 가진 자들이 나그네의 삶에 적합합니다.

 

  • 벧전1:17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동안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창33장 7

 

또한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이 땅에서 열심히 사는 이유와 잘 산다는 개념이 세상과는 좀 달라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 믿는 자들이 잘 산다는 개념은 내가 ‘잘 먹고 잘 산다’는 개념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끌어당겨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소개시켜주는 것, 그리고 결국 다가올 천국을 소망하고 기대하며 이 땅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하늘에 상급을 쌓으며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이 땅에서 잘 산다는 개념인줄 믿습니다. 아멘!

 

창33장 6

 

 

 

여러분 오늘도,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해 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위해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여러분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계십니까?

 

 

창33장 5

 

 

 

 

 

by Chris Cha

주님오심을 기다리며 in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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