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의 편지] 창세기34장 “디나 강간사건 & 아버지 야곱..”

“창세기 강해”

창세기 34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창세기 34장은 크게 3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34:1-12 디나의 강간사건
  • 34:13-24 야곱 아들들의 속임
  • 34:25-31 야곱 아들들의 복수

 

지난 시간 잠깐 다뤘었는데, 야곱은 벧엘에서 했던 자신의 기도를 기억하고 벧엘을 거쳐 고향 헤브론으로 직행해야 했습니다.

 

  • 창28:20-22 그리고서 야곱은 하나님께 맹세하며 말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이 여정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셔서 나를 내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내가 기념비로 세운 이 돌은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내가 반드시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숙곳에서 집을 짓고 가축 우리를 만들었습니다.(창33:17) 그 말은 오래 거주했다는 말입니다. 또 그곳에서 세겜으로 들어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천막을 치고 몇 년을 삽니다.(창33:18)

 

세겜땅은 족장대로의 주요거점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고 번화했을 것입니다. 살기 좋았던 그 땅에서 야곱은 형 에서와의 관계로 인한 긴장도 풀어졌고 그 동안의 짐을 풀고 좀 쉬고 싶었을 겁니다. 한마디로 이제 좀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터집니다.

창33장 3

(야곱의 여정.  얍복강을 건너고 에서와의 만남. 그후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야곱은 숙곳에서 아담브릿지를 건너 세겜에 도착하게 됩니다..)

 

 

 

 

 

 

 

[창34:1 레아가 낳은 야곱의 딸 디나가 어느 날 그 땅(세겜) 여자들이 방문하러 나갔는데.. ]

 

디나는 요셉을 낳기 직전 태어났습니다.(창30:21-24) 그렇다면 요셉과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고 요셉이 17세에 이집트로 팔려간걸 기준으로 한다면(창37:2) 지금은 대략 15살 안팎 정도의 나이였을 겁니다.

 

과거 고대근동엔 15살정도에 혼인을 했기에 디나 역시 혼인적령기였을 겁니다. 그 시기였다면 디나는 호기심 많은 나이였고,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었고, 친구도 사귀어보고 싶고, 세상의 문화도 한번 즐겨보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디나 역시 계속 이동하는 삶에 지쳐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세상에 눈길이 갔습니다. 너무 세상 여자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었을 겁니다. 충분히 디나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만 디나는 나가지(יצע)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디나는 그 매혹적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게 됩니다. 득실대는 아들들 가운데 유일한 홍일점으로 얼마나 부모와 오빠들에게 이쁨을 받으며 귀하게 자라며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했었겠습니까?

 

하지만 사라와 리브가의 사건들을 통해서도 그때 당시 어디를 가든 여자들이 쉽게 겁탈을 당할 수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데 그렇다면 디나는 스스로를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안전한 울타리를 그렇게 쉽게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 벧전5:8 바작 정신을 차리고 철저하게 경계하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무방비로 세상으로 갔다가 우르르 무너지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겠다고 고백했던 그 고등부친구들이 왜 대학청년부로 올라가면 20%으로 줄어듭니까?

 

많은 고등부 친구들이 대학가면 그때 더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겠다 라고 말합니다. 부모님들은 더 합니다. 공부를 더 시키기 위해 주일날 딱 1시간 신앙생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좋은 대학가서 더 멋지게 교회일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후에 ‘세상’과 ‘알코올 주(酒)님’을 맛본 수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정신을 잃고 세상에 빠져들어가서 뼈저리게 후회하는 수많은 부모님들을 보았습니다.

 

이념과 사상과 가치관이 더욱 단단해지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성경적인 인성과 인품 그리고 믿음이 아니라 딱딱한 이론과 냉철한 철학관이 수많은 아이들을 기계로 만들어 버립니다.

 

성경적인 가치관 성경적인 삶의 우선순위를 가르쳐야 할 너무나도 중요한 시기입니다. 야곱은 어쩌면 디나에게 그 교육을 놓쳤는지도 모릅니다. 13절에 야곱의 아들들이 속인다든지, 25절 한 마을의 사람들을 끔찍히 몰살시키다든지, 동생 요셉을 팔아넘기다든지..(창37:28)

 

야곱 자녀들의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아마도 야곱은 자식들에게 신앙적인 교육이나 인품의 교육들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별로 좋지 못한? 아버지였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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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유혹이 점점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시대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지켜야 하지만, 특히 다음 세대들을 지켜줘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지킬수 있도록 도와주고 교육해야 할 때입니다.

 

수많은 자녀들이 부모들이 모르는 사이 세상의 화려함과 짜릿함과 멋져 보이는 세상 유행에 입벌리고 “우와~” 하고 멍~하니 들어가고 있습니다.

 

창34장 6

 

그 대부분의 원인에는 세상의 맛을 은근히 맛보고 허용해준 부모의 책임이 큽니다. 아니면 너무 방관했거나 아니면 성경적인 가르침도 없고 설득력 없이 너무 무섭게만 제한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더 안 좋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청소년들을 상담을 해보며 대부분의 아이들의 상처가 바로 ‘부모’로부터 왔음을 보았습니다. 이 마지막때에 사탄은 가정을 깨려고 온갖 힘을 쏟고 있는 가운데 건강한 믿음의 가정들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이 혹 부모님이시라면, 지금부터라도 믿음의 자녀들을 이 어둡고 타락한 세대속에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어떻게 키울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시길 축복합니다.

 

 

사탄은 우리들의 자녀들이 그 믿음의 울타리를 벗어나 한발짝 내딛길 아주 침을 꼴깍 삼키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발만 들여놔라!’

 

세상의 그 어떤 매력적인 유혹들도 당당히 뿌리칠 수 있는 강한 믿음을 갖도록 또 믿음의 울타리에서 나의 신앙과 믿음을 잘 지켜낼 수 있도록 다음 세대를 더 많이 기도해줘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진짜 자유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진짜 자유함임을!! 꼭 기억하시고 또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창34장 2

 

 

 

 

 

 

[창34:2 히위 사람 하몰의 아들이며 그 지역 추장인 세겜이 그녀를 보고 끌고 가서 강간하였다. 3절 그러나 그의 마음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깊이 끌려 그녀를 사랑하며 부드러운 말로 그녀를 위로하고.. ]

 

창34 6

 

결국 세상의 맛에 매혹되어 불나방처럼 세겜의 마을로 들어간 디나는 몹쓸 짓을 당하게 됩니다. 제가 오래 전 훈련받을 때, 전 세계에서 믿음으로 한가닥들 한다는 교회리더들이 같이 훈련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놀라고 놀랐던 것은, 그곳에 모인 90%이상의 여성분들이 성적인 상처가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의 %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많은 분들에게 그런 상처가 있다는 것이 제게는 너무나도 통탄할 일이고 가슴아픈 일이었습니다.

 

IS는 기독교인 여성들을 지금도 성노리개로, 북한을 포함한 전세계에서도 수많은 성범죄가 믿는 자들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시면 왜 보호해주시지 않고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위로나 말로 이 상처가 씻겨지겠습니까?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은혜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오늘도 이런 상처와 아픔이 있는 여러분의 주변 분을 위해 또 이 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중보했으면 좋겠습니다.

 

  • 시37:38-39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아멘.

 

 

 

 

 

 

 

 

 

[창34:8 그러나 하몰은 야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들 세겜이 당신의 딸을 마음에 두고 연모하고 있으니 그녀와 결혼하게 해 주십시오. 9절 우리와 서로 혼인 동맹을 맺어 당신들의 딸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 딸을 당신들이 데려가시오. 10절 당신들은 우리 땅에 정착하여 어디든지 원하는 곳에 살 수 있고 마음대로 매매하며 재산을 소유할 수도 있습니다’

 

11절 그러자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녀의 남자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습니다. 12절 당신들이 원하는 예물을 말하십시오. 만일 이 처녀만 내 아내로 주신다면 당신들이 그 어떤 것을 요구해도 내가 다 드리겠습니다’]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야곱에게 찾아와 정중히 이야기하려 합니다. 하지만 하몰과 세겜에게 빠진게 있었습니다. 야곱의 가족이 원했고 듣고 싶었던 것은 경제적 호의나 정치적 화합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진정한 사과“였습니다. 하몰과 세겜이 말하려는 의도는 좋았으나 결정적이고 가장 중요한 “용서를 구하는 진정한 사과”가 빠졌던 겁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죽이고 “미안합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라는 말을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도 잘 못합니다. 특히 아내에게..^^;;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회개는 잘 하지만 사람앞에서 나의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도 때론 참 필요한 것 같습니다.

 

창34장 7

 

이 시대 교회가 욕먹는 이유중 한가지도 바로 나의 잘못을 끝까지 시인하지 않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세상은 이미 끝까지 속이고 거짓말하는 세상의 패턴에 질렸습니다. 그래도 어느정도 교회에 대한 기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했을 때 더 욕을 먹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패턴을 따라가지 않고 성경적으로 따라가는 자들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곳 이스라엘에서 행해지는 여러 사역 중 “미안합니다”라는 사과편지 사역이 있습니다. 기나긴 역사속에서 교회들이 유대인들에게 자행했던 시기질투와 또 미움과 그래서 그로 일어난 끔찍한 홀로코스트 사건이나 초대교부들도 반유대주의를 조장했던 그 모든 잘못들을 우리가 직접 자행하진 않았지만 같은 교회의 일원으로 대신해서 그 잘못들을 시인하며 잘못했다고 유대인들에게 사과편지를 전달해 주는 겁니다.

 

창34장 9

 

반응은 실로 놀랍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습니다. 마음을 활짝 엽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사과” 였습니다. 하나님앞에서도 “진정한 회개”가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오는 키(key)인 것처럼,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도 “진정한 사과”는 관계가 열리는 또 하나의 키(key)임을 믿습니다.

 

여러분,

 

솔직하지 않고 대충 숨기는게 지혜로운 처사가 아니라 오히려 솔직하게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인하는 사람이 진짜 멋있는 사람입니다. 나의 부족함과 실수가 드러나는게 부끄러워 지금 당장 숨기는 것은 나중에 밝혀져 더욱 부끄러움을 당하는 더 어리석은 일이지만, 지금 부끄러움을 당하더라도 나의 실수를 당당하게 고백하는 것이 오히려 나중에 박수받는 지혜로운 일임을 기억합시다.

 

 

 

 

 

 

 

 

[창34:13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이 자기들의 누이 디나를 더럽혔으므로 세겜과 하몰을 속여

15절 하지만 당신들이 우리 조건에 응한다면 우리가 당신들의 요구를 들어주겠소. 당신들도 우리처럼 모든 남자들의 포피를 베어 할례를 행하시오. ]

 

속여.. 누구의 모습을 보여주나요? 네 아빠 야곱의 모습입니다. 야곱이 가지고 있었던 성품적인 연약함이 아들들에게도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야곱때보다도 더욱 참담합니다.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도 성품도 아니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 시5:6 주께서는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고 살인자와 사기꾼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 시63:11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들은 그를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들은 말문이 막힐 것이다
  • 시101:7 속이는 자는 내 집에 살지 못할 것이며 거짓말하는 자도 내 앞에 서지 못하리라.
  •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인 마귀의 자식이므로 너희 아비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으므로 그가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한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자기 본성을 드러낸다. 이것은 그가 거짓말장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너무 쉽게 혹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할때가 많습니다. 가벼울수도록 더 쉽게 거짓말하게 됩니다. 때론 선한 거짓말이라 포장할때도 있습니다.

 

성경에선 크든 작든 변명꺼리가 되든 안되든 그 어떤 거짓말조차도 거짓말의 열매를 반드시 맺게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들자면, 삼상21장에 다윗은 거짓말로 놉의 제사장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 거짓말로 인해 놉에 있었던 제사장 가문이 사울에게 몰살당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도 각각 사라와 리브가를 아내가 아닌 것으로 속이려다가 큰 코 다칠뻔 합니다. 라헬도 아빠 라반에게 우상이었던 드라빔을 훔쳐오지 않았다고 거짓말합니다. 하지만 속이면서까지 가져온 그 우상은 야곱가족에게 오히려 저주꺼리가 됩니다. 사울도 아말렉을 다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에게 다 죽였다고 거짓말합니다. 결과는 왕에서 폐위됩니다.

 

이렇듯, 거짓말은 하나님께서 결코 원하시는 행동이 아닙니다.

 

  • 계21:8 비겁한 사람과 불신자와 흉악한 사람과 살인자와 음란한 사람과 마술사와 우상숭배자와 모든 거짓말쟁이들은 유황이 타는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것이 둘째 죽음이다.

 

 

창3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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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문기사에 나온 글의 일부분입니다. 로버트 펠드먼 매사추세츠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10분간 대화에서 평균적으로 거짓말을 3번 한다. 또 다른 연구를 보면 사람들은 하루에 200번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짓말을, 즉 평균 5분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만연한 거짓말을 자각하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

 

여러분, 보이시나요? 세상에선 거짓말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세상에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너무 자연스럽게 거짓말하며 다른 사람을 때론 내 자신까지 속는 거짓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한마디 우리의 숨겨진 생각까지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악하든 선하든 그 어떤 거짓도 우리 삶에서 있지 않도록 날마다 우리 스스로를 점검해보고 나의 입술을 거룩한 입술로 주님앞에 드려야겠습니다.

 

 

 

 

 

 

 

 

[창34:25 3일 후에 그들이 아직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디나의 오빠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가서 그 성을 기습하여 모든 남자들을 죽여 버렸다. ]

 

창34장 3

 

이 일로 야곱은 자신이 죽기 직전에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유언으로 이렇게 남깁니다.

 

  • 창49:5-7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이며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이다. 내 영혼아, 그들의 모의에 가담하지 말아라. 내가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않으리라. 그들은 분노로 사람을 죽이고 재미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 그들의 분노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며 그들의 격노가 잔인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사방 흩어 버리며 그 백성 가운데서 흩으리라.

 

 

 

야곱은 죽을때까지 이 일을 까먹지 않습니다. 야곱에게 이 일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마음아팠던 일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시므온지파는 이 예언대로 실제로 나중에 가나안땅을 분배받을 때 제대로 분배받지 못하고 유다땅에 애매하게 붙어있다가 다른 지파로 흩어져 살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처참한 것은, 신33장에서 모세가 죽기 직전 12지파에 대해 유언할 때, 시므온지파는 아예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아….

 

레위도 마찬가지로 땅을 따로 분배받지 못하고 각 지파의 도피성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바뜨(But)! 레위는 그냥 흐지부지하게 흩어졌던 시므온과는 달리 각 지파의 땅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을 맡아 영적인 리더로써 서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출32장 금송아지 사건때 레위는 하나님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 죽을 때 레위에 대한 예언이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뀝니다.

 

  • 신33:7-10 그는 레위 지파에 대하여 이렇게 축복하였다. ‘여호와여, 경건한 레위 지파에게 우림과 둠밈을 주소서. 주께서는 맛사에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들의 진실함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 부모와 형제와 자녀들까지 외면하면서 주의 명령에 순종하고 주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주의 백성에게 주의 법을 가르치고 제단에 분향하며 주의 제단에 온전한 번제를 드릴 자들입니다. 여호와여, 그들에게 거룩한 능력을 주시고 그들이 하는 일을 기쁘게 받으소서. 그들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모든 원수들의 허리를 꺾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이 감정적이고 순간적으로 저질렀던 한 행동이 나에게뿐 아니라 나에게 얽겨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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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내뱉는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때론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잘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창34:25 3일 후에 그들이 아직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디나의 오빠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가서 그 성을 기습하여 모든 남자들을 죽여 버렸다. 26절 그들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칼로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왔으며

 

27절 그 후에 야곱의 여러 아들들이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누이가 수모를 당한 그 성을 약탈하였다. 28절 이렇게 그들은 양과 소와 나귀와 성과 들에 있는 모든 것을 빼앗고 29절 여자들과 아이들을 다 붙잡아 왔으며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약탈해 왔다. ]

 

창34장 5

 

흥미로웠던 건, 우리나라가 얼마전까지만해도 포경수술 최다 시술국이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거의 시키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어쨋건 성경에서 말하는 그 할례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어와서 최다 시술국까지 되었는지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할례 즉 포경수술을 받아본 남자들은 그 고통이 어떤 고통인지 알 것입니다. 보통 초등학교때 포경수수술을 하고 종이컵을 대고 일주일간을 그렇게 엉기적 엉기적 다니며 지내게 됩니다. 정말 불편합니다.. –;;

 

그 무방비의 상태에서 시므온과 레위는 남자들을 싹 다 죽입니다. 게다가 27절에 보니까 살인에는 가담하지 않았던 나머지 형제들이 일어나 마을로 가서 여자와 아이들을 붙잡고 집안의 모든 것을 약탈해 옵니다.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하더라도 참 치사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도 없었습니다. 의도는 정당했더라도 과정이 악하면 의도나 결과도 악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대의의 목적을 가지고 과정을 생략하거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엉거주춤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셔서 모진 고통과 아픔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겪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고통의 흔적과 수고의 과정 없이는 빈 깡통 영광뿐입니다. 고난없이는 축복의 영광도 없는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 그리고 나머지 야곱의 아들들은 이 일이 동생을 위한 복수라는 정당한 처사라 생각했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이 행동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않는 것이였음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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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착각하고 오해하면서 나를 드러내고 높이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혹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방법으로 얻어내려고 하고 있는지는 않은지 살펴봅시다.

 

 

 

 

 

 

 

 

[창34:30 그러자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내 입장을 난처하게 하였다. 이 땅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이 나를 증오할 것이다. 우리는 수가 얼마되지 않는데 만일 그들이 합세하여 공격해 온다면 우리 집안은 망하고 말 것이다’ 31절 그러나 그들은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처럼 취급해도 괜찮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대꾸하였다. ]

 

여기서도 야곱의 두려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입지 때문에 자신의 신변의 안전 때문에 이렇게 한 처사는 아버지로써 빵점짜리였습니다. 5절에도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는 침묵을 지키기로 하였다. 라고 기록하지만 야곱은 쭉~ 계속 침묵합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이러한 야곱의 단호하지 못한 모습이 시므온과 레위의 이 큰 비극사건으로 몰고가지 않았나 조심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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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중에 아버지가 계십니까? 아니면 아버지가 되실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자녀들에게 말씀으로 훈육하며 타인을 사랑하고 희생하는 법을 가르치고 영원한 것을 보는 법을 그리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수 있는 법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세상은 그런 남자를 비웃을수도 있겠지만, 이 시대에 그런 거룩함을 열망하는 믿음의 아버지들이 각 가정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주역들이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창31장 5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될 것은, 이 모든 비극적인 사건 배후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것이 바로 “야곱의 나태함과 안주함”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멈추지 말고 하나님과 약속하신 곳으로 끝까지 그리고 앞으로 달려나갔어야 했습니다. 중간에 멈추거나 한 눈 팔지 말아야 했습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여전히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나의 삶에 안주해버리고 순종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없는지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축복합니다. 한주간 또 말씀으로 온전히 승리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by Chris Cha

주님오심을 기다리며 in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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