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의 편지] 창세기37장 “요셉의 꿈 & 이집트로의 여정!”

“창세기 강해”

창세기 37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창세기 37장을 2단락으로 나누어 본다면,

  • 37:1-11 요셉의 꿈
  • 37:12-36 이집트로 팔려가는 요셉

 

지난 장에서는 이삭의 아들 “에서의 후손들”에게 대해서 다루었었습니다. 이번 37장은 이제 “야곱의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의 꿈 이야기와 이집트로 팔려가는 이야기인데 이번 37장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창37:1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살던 가나안 땅에서 계속 살았다. ]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던 에서와는(36:8) 다르게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삭이 살던 이 가나안땅(헤브론)에서 계속 살았음을 성경은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보여주는 중요한 그림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시작하시고 그의 후손들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사명이 있다면 그 곳이 어디든 상황이 어찌되었든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신실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 맡기신 “그곳”은 어디입니까?

 

상황이 어렵든, 외롭고 지치든, 불편하든 간에 그 곳을 떠나지 않고 그 땅을 파수하며 지키며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해내고 서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창37:2 다음은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17세의 소년 요셉은 자기 아버지의 첩 빌하와 실바가 낳은 아들들과 함께 양을 치면서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일이 일러바쳤다.

 

3절 야곱은 노년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보다 그를 특별히 사랑하여 화려하게 장식한 긴 겉옷을 만들어 입혔다. 4절 그러자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자기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말도 잘 하지 않았다. ]

 

창37장 3

 

야곱은 가득이나 가장 사랑했던 라헬도 죽으니 그의 사랑의 초점이 어미 잃은 요셉에게만 쏠려 있었습니다. 이런 야곱의 편애의식 속에서 오히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하나님은 편애하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가사의 찬양이 있습니다.

 

“뚱뚱해도 홀쭉해도 눈이 작아도 키가 커도 키 작아도 얼굴 까매도

친구되신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너무너무 사랑하시죠

 

튼튼해도 연약해도 돈이 없어도 짝궁뎅이 머리커도 앞니 나와도

친구되신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너무너무 사랑하시죠”

 

아이들 찬양인데 맞는 말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조건없이(unconditional) 사랑해주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때로 우리는 이 감사한 일을 자주 잊어먹는 듯 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불에 기름을 붓듯이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낱낱이 일러바침으로 더욱 형들을 노하게 만듭니다. 요셉앞에선 어떤 짓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밉다못해 두렵기까지 했을 겁니다.

 

 

우리 둘째 아이(3살)가 요즘 그럽니다.. 첫째 언니가 혼자 몰래 까먹고 있으면 “엄마~ 언니 뭐 먹어요~” 엄마 핸드폰 만지고 있으면 “엄마~ 언니 핸드폰 봐요~”

 

더 웃긴건, 그래서 엄마한테 첫째 아이가 혼나서 시무룩해 있으면 둘째 아이가 “엄마~ 언니 삐졌어요~ 어? 언니가 왜 삐졌지?” …  정말 ‘헐..’ 입니다..

 

첫째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놈 한대 쥐어박고 싶네!’ 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창37장 5

 

17살이면 어린 나이도 아니었는데.. 요셉은 분위기파악 하는 훈련을 조금 더 일찍 했어야 했습니다. 보통 아버지가 예쁜 색동옷을 혼자만 입혀줬으면 분위기보고 입다물고 그냥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왜이리 눈치가 없는지..

 

 

어쨌든, 야곱과 요셉의 이러한 성품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연약한 모습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고 준비시키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집트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탈출시키게 만드는 바로 “출애굽(出埃及)”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창37:5-11 한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에게 그 꿈 이야기를 하자 그들은 그를 더욱 미워하였다. 7절 우리가 들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는데 갑자기 내 단이 일어서고 형님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였습니다’ 하자  

 

8절 형들이 그에게 ‘네가 우리의 왕이 될 작정이냐 ? 네가 정말 우리를 지배하겠느냐?’ 하고 조소하며 그 꿈 이야기 때문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다.

 

9절 … 해와 달과 열 한 개의 별이 나에게 절하였습니다’ 하고 10절 또 그 꿈 이야기를 자기 아버지에게도 하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네가 꾸었다는 그 꿈이 도대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정말 네 앞에 가서 땅에 엎드려 절하겠느냐?’ 하고 그를 꾸짖었다.

 

11절 요셉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 ]

 

창37장 1

 

요셉은 우리가 잘 아는 두 가지 꿈을 꿉니다. 첫번째 꿈은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 두번째 꿈은 해(아빠), 달(엄마), 11개의 별(형들)이 요셉에게 절했다는 그 꿈..

 

하지만 요셉은 그 꿈들을 지혜롭게 이야기했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배려가 요셉에겐 전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덮어주는 성숙한 마음도 없었습니다(고자질). 그랬기에.. 요셉은 가슴아픈 연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그분의 꿈과 비전을 주신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연단이 따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연단과 고난의 시간은 그를 그저 고통스럽게 하려는 목적이 아닌 연약한 성품이 변화되고 깍김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그릇이 되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고난의 훈련시간은 불행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의 시간임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요셉에게, 형들에게 팔리고 이집트의 기나긴 감옥의 경험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감당할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창37장 6

 

만약 그 성품으로 이집트 총리가 되었다면?

 

“바로왕이여, 쟤네들 저기서 쏘근쏘근 왕에 대해 쑥덕거리던데요?”, “야, 너희들, 기근이 왔으면 힘들어하지 말고 한번 나처럼 꿈을 꿔봐~ 내가 어떻게 위대한 사람이 되었는지 이야기해줄께 이리와봐~”  ㅡ,ㅡ;;

 

 

오히려 그 고난은 요셉을 더욱 강하게 했고 더욱 견고하게 했으면 인내와 용서를 배우게 하였으면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능력을 겸비하게 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고난은 축복입니다.

 

이제 요셉은 그 연단의 시간으로 들어갑니다..

 

 

 

 

 

 

 

 

[창37:12 요셉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양을 치고 있을 때 13절 야곱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지 않느냐 ? 네가 형들에게 좀 다녀와야겠다’ 요셉이 아버지에게 ‘예,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

 

세겜은 헤브론에서 북쪽으로 약 80km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면 자그마치 3-4일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왜 이렇게 양을 치기위해 멀리까지 형들은 올라갔고, 왜 또 세겜이었을까요?

 

이스라엘은 건기가 되면 비가 뚝 끊기고 풀들이 마르기 시작하기 때문에 양들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서는 위쪽으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우기가 되면 서서히 남쪽으로 내려왔구요..

 

하지만 여기서 드는 한가지 의문점은, 얼마 전, 그 세겜에서 자신들의 동생 디나가 강간당하였고,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의 남자들을 다 죽였던 그 끔찍한 사건이 있었던 곳으로 왜 또 야곱의 아들들은 찾아갔냐는 것입니다.

 

정확한 답은 성경에서 말해주고 있지 않지만, 34장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세겜은 그때 당시 매우 번화하고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직 그곳에서의 경험했던 세상의 쾌락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동경함으로 찾아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세겜엔 이미 그들이 모든 남자를 다 죽였습니다.(34:24) 남아있던 사람들은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이었을 겁니다. 도와주러가 아닌 오히려 그들을 두려워했던 그 마을 사람들을 또다시 괴롭히러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러 가지는 않았을까요?

 

만약 야곱의 아들들이 이들을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는 선한 마음이 있었다면 이제 잠시 뒤 동생 요셉이 나타났을 때 그렇게 무자비하게 살해하려는 악한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이미 야곱의 아들들이 잔인하고 폭력적인 성품과 세속적인 죄악들로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증거였습니다.

 

창37장 8

 

 

 

 

 

 

 

[창37:17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쫓아가 도단에서 그들을 찾았다. ]

 

‘도단(דֹּתָן)’은 단어 자체 어원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두 우물’이라는 뜻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형들이 요셉을 밀어넣었던 우물이 있어서 그랬나 봅니다.

 

이제 요셉은 세겜에서 형들을 찾지 못하고 도단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단에서 형들을 만나게 됩니다. 세겜에서 도단은 약 20km 북쪽으로 더 올라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한마디로 헤브론에서 도단까지 총 약 100km를 요셉은 형들을 위해 찾으러 온 겁니다. 약 5일되는 거리를요.

 

100km나 되는 머나먼 길을 아버지의 명령을 받들어 형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려고 그 어린나이에 목숨걸고 찾아온 겁니다. 그런데.. 형들은 그 모습을 보며 뭐라고 말합니까?

 

“죽여버리자!”

 

여러분, 누가 생각나십니까? 네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예수님은 영생을 위한 영의 양식을 들고 저 하늘에서 땅으로 머나먼 길을 내려오셨습니다. 하지만 그의 형제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창37:18 그러나 그들은 멀리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일 음모를 꾸미며 19절 ‘저기 꿈꾸는 자가 오고 있다. 20절 자, 그를 죽여 구덩이에 던져 넣고 맹수가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 하고 서로 말하였다. ]

 

얼마나 싫었으면, 미웠으면, 악한 미움의 감정이 그들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치 가인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죠?

 

  • 창4:7 네가 옳은 일을 하지 않으면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을 것이다. 죄가 너를 다스리고 싶어해도 너는 죄를 이겨야 한다!

 

 

 

만약 형들이 옳은 일을 했다면, 떳떳하게 살았다면 요셉이 자신들에게 어떻게 해도 화나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의 어두움이 건드려지고 드러나게 되니 죄의 다스림속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미 죄를 이길 힘이 그들에겐 없었습니다.

 

 

★Application 1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죄를 이길 힘이 여러분에게 있으십니까? 아니면 죄의 지배를 받고 계십니까?

 

 

★Application 2

형들이 또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꿈꾸는 자가 온다!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

 

이건 우리를 향한 사탄의 조롱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비전을 주셨다고? 그게 진짜인줄 알아? 그 꿈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어! 너가 어떤 인간인데 그걸해! 절대 못해! 그 부르심 넌 절대 감당할 수 없어!!” “어디 한번 하나님의 꿈이 이뤄지는 지 봐보자!!”

 

여러분도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NO!! NEVER!!!

 

  • 롬11:29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과 부르심에는 후회하는 일이 없느니라!!
  • 빌1:6 여러분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을 나는 확신하노라!!

 

 

아멘!!!

 

여러분 각자에게 분명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비전이 있는 줄 믿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분들은 찾으십쇼! 구하십쇼! 분명한 부르심이 반드시 모든 자에겐 있습니다.

 

정확히 들으신 분들은 의심하지 말고 믿고 나아가십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으십니다! 그 꿈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직접 일하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쇼! 아멘!!

 

 

 

 

 

 

 

 

 

[창37: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자 그들은 화려하게 장식한 요셉의 긴 겉옷을 벗기고 24절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는데 그 구덩이는 물이 없고 텅 비어 있었다. ]

창37장 2

 

누가 생각납니까? 바로 십자가 지시기 바로 전, 모함당하고 뺨을 맞으시며 옷이 찢기시고 대제사장 가야바 집의 구덩이 갇히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마26:57)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생각나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을 겁니다. 하지만 형제들 중 단 한명의 형제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에 더더욱 울었을 겁니다.

 

어린 요셉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서러움이었을 겁니다.

 

 

 

 

 

 

 

 

[창37:26 이때 유다가 자기 형제들에게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 사실을 숨긴들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27절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기고 그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도 우리와 살과 피를 나눈 우리의 형제이다’ 하자 그의 형제들이 그의 말에 동의하였다. ]

 

창37장 9

 

22절에 르우벤도 요셉을 죽이지는 말자고 말했고 그 대안으로 구덩이에 넣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가 동생 요셉을 죽이지 말아야 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유다는 우리가 동생을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살과 피를 나눈 형제라는 겁니다.

 

이미 눈이 돌아가 죄를 다스리지 못하는 형제들로부터 그나마 르우벤이 구덩이로, 유다가 이스마엘 상인들로 요셉을 넘겨줌으로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요셉은 토스 토스(toss)됩니다.

 

형제들도 요셉조차도 그 순간 앞으로 되어질 일들에 대해 상상조차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신실하게 진행중이었습니다.

 

 

★Application

여러분 가운데 전혀 이해되어지지 않는 일들이 여러분 삶가운데 지금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내가 왜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려가고 있지?’ 라고 팔려가며 생각하는 요셉처럼, 여러분도 이렇게 질문할수도 있습니다.

 

‘나에겐 왜 그때 그런 끔찍한 아픔이 생겨야 했을까?’ ‘난 왜 이곳에서 이렇게 생고생하며 있는 걸까?’, ‘왜 이 사람은 날 이토록 싫어하는 걸까?’, ‘난 왜 남들이 겪지 않는 그런 고통이 있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난 왜 이런 가족에서 태어나야 했을까..’, ‘왜 내 가족은 이렇게 가난하기만 한거냐..?’ 라는 생각들..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이 어느 대학교를 나왔든, 과거에 어떤 상처가 있었든, 나를 미워하는 누구를 만났었든, 지금 내가 뭘 하는지조차 모르든,,

 

한가지 확실한 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한 그분의 부르심대로 여러분을 신실하게 하나씩 하나씩 경험시키시고 인도하고 계시단 사실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그 일이 여러분의 부르심과는 전혀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전혀 연관도 안 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경험과 만남들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담을만한 그릇으로 깍고 빚어가는 과정이었음을 보시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아멘.

 

 

 

 

 

 

 

 

[창37:28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갈 때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려 은화 20개를 받고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러자 그 대상들은 요셉을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 ]

 

훗날 하나님께서는 종의 몸값을 은 30세켈(약340g)로 정하셨지요(출21:32). 그런데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은화 30개에 팔아넘겼구요..

 

  • 출21:32에 만일 소가 성인 남종이든 여종이든 남의 종을 들이받아 죽이면 소 임자는 그 종의 주인에게 은 30세켈(약340그램)을 주어야 하며 그 소는 돌로 쳐죽여야 한다.

 

 

여기서 요셉은 은 20개(약230g)에 요셉을 팝니다. 5세-20세미만의 노예(종)값은 20세켈이었다고 합니다. 요셉이 17세였으니 제값에 팔린 거였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20세켈에 팔린 것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은 20세켈에 팔린 요셉은 30세겔에 팔린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20세 미만 예수님은 20세 이상이였기에..),

 

또한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결국 왕의 다음가는 총리로 나라를 대표하게 되었고 자신의 가족을 살려냈던 그림은, 바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나라를 대표해 그분의 가족들을 살려내는 바로 그 그림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요셉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복음의 이야기가 이렇게 숨겨져 있었군요!

 

 

 

 

 

 

 

[창37:31 그들은 염소를 죽이고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그 피에 적셔 32절 그것을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며 ‘우리가 이것을 주웠는데 요셉의 옷인지 보십시오’ 하였다.

 

33절 그러자 그는 그것을 알아보고 ‘이것은 내 아들의 옷이다. 맹수가 그를 잡아먹었구나. 내 아들 요셉은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 라고 통곡하며 34절 자기 옷을 찢고 허리에 굵은 삼베를 두르고 오랫동안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

 

창37장 4

 

아주 씁쓸한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 아들들이 염소를 죽여 피를 옷에 묻히고 야곱에게 가져가서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 이거 지금 누가 생각나십니까?

 

네 바로 속이며 살았던 “야곱”입니다. 야곱도 엄마 리브가와 짜고 염소를 죽여(창27:14) 이삭에게 축복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에서라고 거짓말을 하며 장자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그 아빠의 그 아들들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거짓말 한데로, 그의 아들들에게도 거짓말로 당합니다. 야곱은 펑펑 울었습니다. 이것이 “거짓말의 비극적 되물림”입니다.

 

여러분,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는 것 다 아시죠..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을 이집트에서 다시 만날때까지 또 다른 계속적인 거짓말을 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게 스스로를 옥죄여오고 더욱 자신들을 비참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숨막혔을 겁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기엔, 또 다시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던 겁니다. 아니 그냥 요셉이 그때 죽었을거라고 마치 인정하며 스스로를 인정하며 무덤덤하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안의 죄책감은 아마 쉬이 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Application

여러분, 바로 죄가 이렇습니다. 죄는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죄의 문을 열어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죄를 범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점점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이 지금 해결해야 할 죄가 있다면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 그 죄에 대해 회개하십쇼. 솔직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죄 때문에 오늘도 슬퍼하지 마십쇼. 거룩함으로 일어나 죄를 이기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여러분, 한주도 힘내십쇼! 그리고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들을 깊이 묵상하며 인정하십쇼!

그분이 여러분의 삶을 지금 인도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by Chris Cha

주님오심을 기다리며 in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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