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의 편지] 창세기44장 “베냐민 은잔사건 & 유다의 멋진 변호!”

“창세기 강해”

창세기 44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창세기 44장을 3단락으로 나누어 본다면,

  • 44:1-13 자루 속 은잔 발견
  • 44:14-17 요셉의 추궁
  • 44:18-34 유다의 변호

 

43장 마지막 요셉이 베풀어준 만찬을 즐기고 집으로 가는 형들의 발걸음은 한층 가벼워졌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또다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일이 꼬여도 어떻게 이렇게 꼬일수가 있을까요? 다시한번 위기를 맞는 형들의 상황으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창44:1 요셉은 자기 집안 일을 맡은 하인에게 이렇게 지시하였다. ‘너는 각 사람의 자루에 가져갈 수 있을 만큼 양식을 채우고 각자의 돈도 그 자루에 넣어라 2절 그리고 제일 막내 동생의 자루에는 내 은잔을 넣고 그의 곡식 값도 함께 넣어 주어라’

 

창44:4 그들이 성에서 나가 얼마 가지 않았을 때에 요셉이 자기 하인에게 말하였다 ‘그 사람들을 급히 뒤쫓아가서 그들에게 어째서 너희가 선을 악으로 갚느냐?

 

 

“제일 막내동생의 자루에는 내 은잔을 넣고”

 

요셉이 그냥 순순히 보내줄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자신의 가족들을 여기 이집트로 데리고 올 생각이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45:7)

 

하지만 그 전에 한가지 형들을 한번 테스트해보길 원했을 겁니다. 바로 자신에게 행했던 과거 형들의 태도와 그 미움이 여전히 동생 베냐민에게도 있었는지 보길 원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막내 동생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형들의 반응과 태도를 보면 답이 나올겁니다. 요셉은 바로 그것을 노렸던 겁니다.

 

 

 

“너희가 선을 악으로 갚느냐?”

 

형들안에 있었던 그 잔인한 악이 여전히 살아있었는지 들춰보는 질문이었을 겁니다. 과거 세겜남자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고 요셉을 팔아 넘겼던 그들속에 있던 죄악이 아직 살아있었는지 말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17살부터 지금 약 38세가 된 지금까지 약 20년동안 형들을 만나면 꼭 해보고 싶었던 질문이지 않았을까요..?

 

나는 형들을 그렇게 사랑하고 섬기고 싶은 마음에 도시락을 들고 헤브론에서 도단까지 약 100km를 그것도 걸어서 찾아갔는데 어떻게 형들은 나를 차마 죽이진 못하고 팔아넘길수 있었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내가 뭐 그렇게 밉다고…

 

 

★Application

우리도 때론 우리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런 오해들과 관계의 틀어짐을 겪게 됩니다. 나는 정말 잘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 사람은 나를 미워할까?

 

물론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나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상대방을 아프게 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 순수하게 선을 베풀었지만 상대방이 악으로 대응할 때 여러분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런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분노 쫘~악~~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해보라고 팁을 주고 있습니다.

 

  • 롬 12:19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직접 복수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성경에는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다. 내가 갚아 주겠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롬 12:20 또 `네 원수가 굶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러면 네 원수는 머리에 숯불을 놓은 것같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 롬 12:21 그러므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이런 일들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아멘!!

원수들을 부끄럽게 합시다..!!

 

 

 

 

 

 

 

[창44:5 너희가 무엇 때문에 내 주인이 가지고 술을 마시며 ‘점치는데’ 사용하는 은잔을 훔쳐 갔느냐 ? 너희는 정말 악한 짓을 하였다고 말하라’

 

창44:15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어째서 이런 짓을 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은 ‘점으로’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몰랐느냐?’ ]

 

‘점치는데..’, ‘점으로..’

 

지금 보여주는 구절들을 보면 마치 요셉이 점을 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마술사들은 왕을 위해 은잔에 물을 담고 그 물의 변화를 보며 점을 치는 미신적 행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점을 쳤을까요? 성경엔 자세히 기록하진 않지만 요셉이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정확한 꿈의 지시를 받을 정도면 우상숭배로 자신을 더럽히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면 왜 요셉은 이 점치는 은잔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아마도 요셉이 꿈을 풀어내는 신비한 능력 때문에 왕이 술객(마술사)들에게 주는 선물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선물이니 버리진 않고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은잔의 가치와 의미가 이집트에서는 더군다나 왕을 위해 점치는 귀한 물건이었기에 요셉은 형들을 확실히 테스트하기 위해 아주 적합한 도구였을 겁니다. 또한 이 은잔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속이기에 좋은 도구였을 겁니다.

 

 

 

‘점치는데’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나하쉬(נָחַשׁ)”입니다. 이 나하쉬는 몇 가지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1. 마술하다, 점치다, 요술
  2. (현대 히브리어) 뱀
  3. (피엘form) 추측하다(conjecture), 가정하다(hypothesize)

 

그래서 점이나 마술할 때 뱀이 기어가는 소리 ‘쉬익~’ ‘쉬이~’ 소리를 낸다하여 나하쉬라는 단어가 나왔다는데 훗날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아예 이 단어를 “뱀”이라는 단어로 바꿉니다.

 

마술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놀라운 역사를 모방한 사탄의 계책입니다. 그래서 영적분별력없이는 하나님의 기적과 사탄의 기적을 분별해 낼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영적분별력이 없다면 사탄의 기적이 마치 하나님의 역사인마냥 믿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때 이러한 사탄의 능력과 기적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배도의 길을 걷게 되고, 심지어 하늘에서 불이 땅으로 내려오게끔 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 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계13:13-14)

 

점치고 굿을 보는 것, 마술을 좋아하는 것.. 이것들은 정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 신 18:9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그 곳 민족들의 더러운 습관을 본받지 마십시오.
  • 신 18:10 여러분의 자녀를 산 제물로 바쳐 불에 태우거나 점을 치거나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징조를 말하거나 마술을 하거나 무당이 되거나
  • 신 18:11 주문을 외우거나 영매나 강신술을 행하거나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오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 신 18:12 “이런 짓을 하는 자를 여호와께서는 미워”하십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방 민족들을 여러분 앞에서 쫓아내시는 것도 그들이 바로 이런 짓을 하기 때문입니다.
  • 신 18:13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흠 없이 살아야 합니다.’
  • 신 18:14 여러분이 쫓아낼 민족들은 점치고 예언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만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이 그렇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추측하다, 가정하다(니헤쉬, נחשׁ)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또한 사람들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추측하는 것이 뱀(나하쉬, נחשׁ)이 주는 생각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악과를 따먹지 마라 했는데 사탄은 “야~ 그거 선악과 하나 먹는다고 진짜로 죽는다고~? 말도안되! 생각해봐~ 그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까봐 그분이 두려워서 먹지 말라고 한거야~~ 무식하게 그 말을 그냥 믿지말고 따져보고 생각해봐봐~~”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계속 추측하게 만들고 내 생각의 기준으로 의심하게 만듭니다. 추측하고 가정하게 만듭니다.

 

 

★Application 1

우리도 얼마나 많은 순간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이 먼저 앞질러 상황에 대한 추측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나아가질 못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순간 하나님의 영역을 제한하고 의심하고 있습니까?

 

이런 추측과 가정을 우린 조심해야만 합니다.

 

 

★Application 2

믿는 분들 중에서도 절박한 심정에 무당을 찾거나 또 어떤 이들은 재미로 오늘의 운세를 보거나 커플과 함께 궁합을 보기위해 사주카페를 들리는 아주 위험한 모험?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것들.. 귀신의 거짓말을 듣는 겁니다. 여러분, 위의 신명기말씀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그 죄악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끔찍히 싫어하시는지 깨달아 아셔야 합니다.

 

또 요새 점치고 굿하는 영화들 마술에 대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매직’에 열광합니다. 남들을 속이는 것에 ‘짜릿함’을 느낍니다. 귀신의 존재를 경험하는 모험에 짜릿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을 즐깁니다.

 

 

그것들이 다 “적그리스도”가 나오기 위한 길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전세계를 속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에 속는 것을 적응하도록 준비시키고 있는 겁니다.

 

부디 세상이 주는 거짓말에 취하여 잠들지 마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인 마귀의 자식이므로 너희 아비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으므로 그가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한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자기 본성을 드러낸다. 이것은 그가 거짓말장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창44:12 그 하인이 장남부터 시작하여 막내 동생에게 이르기까지 나이 순으로 샅샅이 뒤졌는데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다. 13절 이것을 본 형제들은 옷을 찢고 슬퍼하며 각자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되돌아왔다. ]

 

이제 요셉의 하인이 뒤쫓아와서 형들의 일행을 검사하고 계획했던 대로 베냐민 자루에서 은잔을 발견하고 다시 성을 끌고가는 장면입니다.

 

자 그런데 이때 형들의 모습속에서 요셉때와는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옷을 찢고 슬퍼하며’

 

고대 옷을 찢고 슬퍼하는 행위는 극도의 슬픔을 표현할 때 나오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말은 요셉의 형들은 베냐민을 지극히 아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아꼈다는 겁니다.

 

비록 20년전에는 성숙하지 못함으로 동생 요셉을 파는 실수를 범했지만 그 실수로 인해 겪어야 했던 죄책감 역시 요셉이 겪어야 했던 고난에 비해 못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형들도 그 고난과 연단으로 말미암아 더 낮아짐과 겸손의 사람으로 또 사랑의 사람들로 빚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창44:16 이때 유다가 대답하였다 `우리가 총리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무슨 변명을 하며 어떻게 우리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죄를 드러내셨으니 이제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당신의 종이 되겠습니다’ ]

 

 

와~! 유다의 이 엄청난 고백을 들어보십쇼!

 

“무슨 변명을 하며..”,

“하나님이 우리 죄를 드러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당신의 종이..”

 

유다와 형들은 은잔이 어떻게 들어갔고 어떻게 자신들이 오해 받고 있는지 굳이 변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고의로 넣어든지 실수로 들어갔든지 그들은 따져볼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않고 그냥 우리들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멋진 모습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드러내셨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죄인데 내 안에 어쨌든 죄가 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드러내셨는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냐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냥 그렇다고 믿는 순수한 믿음과 낮고 겸손한 태도를 가졌던 겁니다.

 

또, 우리가 다 당신의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더 이상 나만 살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의 죄가 곧 우리 모두의 죄이고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종이 되도 함께 종이되는 ‘한 가족’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게 누구의 모습일까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셨지만 그 어떤 변명도 자신을 향한 변호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순종하심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셨지요.

 

또한 모든 인간의 죄를 뒤집어 안으심으로 아버지하나님으로부터 죄인이라 단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렇게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아버지의 명령을 실행하셨고 또 이 땅에 인간들을 섬기러 ‘종’처럼 내려오셔서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바로 이 유다의 고백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Application

그렇다면 이 모습은 우리 믿고 거듭난 자들의 모습이기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내가 잘난 것 하나 없는 철저한 죄인임을 그저 고백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분의 종으로써 하나님을 섬기고 또 사람을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혹시 이 고백.. 주님, 내가 아무 변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내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다 당신 앞에 내려놓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종이나이다..’ 라며 하나님앞에 나아가야 할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나아갑시다..!

 

 

 

 

 

 

 

[창44:17 그러자 요셉이 `내가 그렇게 하지 않겠다. 잔을 훔쳐 간 자만 내 종이 될 것이며 너희는 너희 아버지에게 평안히 돌아가거라’ 하자 ]

 

요셉은 나의 가족을 이집트로 부르기 전, 마지막 한가지를 테스트를 해봐야 했습니다. 나의 형들이 과연 막내 베냐민이 궁지에 몰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기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바라보며 20년 전 구덩이에 갇혀있는 자신이 생각났을 겁니다. 여전히 자신들을 위해 동생을 버릴 것이냐, 아니면 동생을 내 사랑하는 가족으로 알고 목숨걸고 지킬 것이냐..

 

 

 

 

 

 

 

 

[창44:18-31 유다가 … ‘총리께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 아버지가 노년에 낳은 어린 동생이 있는데 그의 형은 죽었고 그의 어머니가 낳은 아들 중에서 그만 남았으므로 아버지가 그를 무척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총리께서는 우리에게 너희 막내 동생을 데려오지 않으면 너희가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총리에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양식을 좀 사오라고 하셨을 때 … 막내 동생과 함에 가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람을 볼 수가 없습니다. …

 

그때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이 아이마저 내게서 뺏어 가려고 하는구나! 만일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면 너희는 백발이 된 나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보내는 자들이 될 것이다. …

 

아버지의 생명이 이 아이에게 달려 있는데 우리가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 만일 이 아이가 우리와 같이 가지 않으면 아이가 없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죽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발이 된 아버지를 우리가 죽이는 셈이 됩니다. ]

 

 

요셉의 추궁에 대한 유다의 변호가 나옵니다. 18-34절까지 이 부분은 히브리 산문 문학 중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이 희생하면서까지 동생 베냐민을 지키려 하는 장면입니다.

 

다른 형제들은 다 가만히 있을 때 유일하게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 바로 ‘유다’였습니다. 도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르우벤은 말만했지만 유다는 실행으로 옮겨 요셉이 살 수 있도록 합니다.

 

만약 형들이 그냥 베냐민을 두고 가려면 얼마든지 갈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아빠 야곱에게도 충분히 설명할 만한 명분도 있었고 어느정도 설득하고 시간이 지나다보면 예전처럼 아버지 야곱도 이해하고 넘어가겠지..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었을 겁니다.

 

괜히 여기서 나섰다가 나선 사람도 죽고 여기 있는 다른 형제들 목숨도 위태롭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사실 동생이었고 가족이었던 요셉과의 만남이라 그다지 지금 상황의 긴박함을 잘 느껴지긴 어렵겠지만 사실 실제 상황에선 형들에게 요셉과 이집트는 벌벌 떠는 존재였었습니다.

 

함부로 대답했다가 바로 목숨이 날라가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건 굉장히 위험한 도발이었습니다. 감히 그때 당시 가장 강력했던 나라 총리에게 그런 말대꾸를 해?!

 

그렇지만 유다는 약 20년전의 사건의 비극이 다시 한번 되풀이되면 안되겠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 그 순간의 유다의 마음을 한번 이렇게 적어봅니다.

 

 

‘그래.. 비록 내 아버지는 요셉과 베냐민만 사랑하셨지만 그럼에도 그 아버지는 여전히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이고 나를 낳아준 아버지이다. 내가 내 아버지를 다시 똑 같은 상황으로 슬프게 만들 순 없다..’

 

베냐민..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너도 마음에 쏙 들진 않지만 그래도 너도 내 동생이다. 그때 너의 형 요셉을 잃게 했던 그 죄책감으로 또 다시 살고 싶진 않다. 너도 우리의 가족이다.

 

아니 내가 살려야 하는 내 소중한 가족이야.. 난 내 아내도 잃어봤고 내 두 명의 아들들도 이미 잃어봤다. 가족과 이별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고 마음 아픈 일인지 나는 이미 겪어봤지.. 그래 또다시 그런 아픔을 만들지 말자. 그렇게 어리석게 가족을 잃지 말자.

 

베냐민.. 너는 내가 지킨다. 그 동안 못해준 형 역할 제대로 한번 해야겠구나. 내가 너 목숨 걸고 지켜주마!’

 

 

 

 

 

 

[창44:32 게다가 나는 아버지에게 목숨을 걸고 이 아이의 안전을 보장하며 만일 이 아이를 아버지에게 데리고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평생 동안 그 죄의 댓가를 치르겠습니다 하고 약속했습니다.

 

33절 이 아이 대신 내가 총리의 종이 되어 여기에 머물러 있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 아이는 형제들과 함께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34절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고 어떻게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는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습니다’ ]

 

유다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다. 이 희생의 값을 치를 줄 알았던 유다의 혈통으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나왔던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진 않았을까요?

 

18-34절까지 읽으며 유다의 이런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내 목숨 걸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 내가 죽더라도 살리고 싶어하는 마음..

 

 

★Application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사실 편하고 사랑해서 더 애증도 많습니다. 얄미워 보이기도 하고,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더 함부로 말하고 막 대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딪히고 여리 쿵 저리 쿵 하더라도 가족은 가족입니다. 지금도 제 방 밖에서는 첫째, 둘째, 셋째 아이가 서로 소리지르며 싸우다가 울다가 또 친하게 지내고 깔깔거립니다.

 

이게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다른 사람이 날 다 떠나도 다른 사람이 다 날 미워해도 결국 곁에 남아주는 사람은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족과 어떻습니까? 지금은 형들이 어렸을 때 요셉을 팔 때처럼 미성숙해서 그냥 모든지 미워보이고 싫고 짜증나서 어색하고 틀어진 관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유다 모습처럼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욕하면 들어주고, 나를 찌르면 찔려주는, 그 모습이 어떻든지 간에 용서하는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해주는 그런 성숙한 모습과 희생의 마음이 생겨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생겨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족이 회복되어야 할 때’입니다.

 

 

육적인 가족뿐 아니라 ‘우리 교회의 몸된 가족도 회복되어야 할 때’입니다. 서로 용납하고 서로 용서하고 이해해주는 그런 사랑이 지금 이 마지막때 교회들안에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어느 모임이든 어느 공동체이든 교회이든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곳엔 서로 가지고 있는 모난 부분으로 서로 찔리기 마련입니다. 그런 부딪힘 없고 문제없는 교회가 이 세상에선 한 군데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젠 우리 교회는 한층 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찔리면 찔려주고 죽이면 죽어주는 그런 사랑의 마음을 서로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 교회는 삽니다. 그 가족은 삽니다. 반드시 삽니다.

 

여러분, 오늘 유다처럼 내가 대신 죽을지언정 사랑해줘야 할 가족이 있으십니까? 용서해주고 품어줘야할 교회멤버가 있으십니까? 회복합시다.

 

내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자들의 꼬였던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지고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어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을 선포한다! 희생의 사랑으로 일어나는 교회들이 될찌어다!! 그렇게 될찌어다!! 아멘!!

 

 

 

 

 

여러분 이번 한 주도 모두 승리하십쇼!!!

 

 

 

 

 

 

 

 

by Chris Cha

주님오심을 기다리며 in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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